교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칠판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위로 올리면 짧은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급훈이다.
한 줄 또는 두 줄 정도의 짧은 문장이 교실 앞 벽에 걸려 있었다. 어떤 반은 직접 붓글씨로 써 붙였고, 어떤 반은 컴퓨터로 출력해 꾸며 놓기도 했다.
학생들은 매일 그 아래에서 수업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며칠은 급훈을 자주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기 말이 되거나 다른 반 교실에 들어가면 "우리 반이랑 다르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문장이 새로운 공간에서는 눈에 띄었던 것이다.
급훈은 언제 정했을까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급에서는 여러 가지를 정했다.
반장과 부반장을 뽑고, 청소 구역을 나누고, 시간표에 맞춰 생활을 시작했다.
급훈도 이런 과정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마다 방식은 달랐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거나 담임교사가 제안하는 경우가 있었다.
"성실하게 생활하자."
"서로 배려하는 반."
"웃으며 배우는 교실."
이처럼 짧고 기억하기 쉬운 문장이 자주 선택됐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여러 문구를 적어 내고 투표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은 진지한 문장을 쓰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문구를 적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물론 실제 급훈으로는 학급 분위기에 맞는 문장이 최종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교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었을까
급훈은 보통 칠판 위나 교실 앞 벽처럼 모두가 볼 수 있는 위치에 걸렸다.
학생들이 책상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다.
게시판처럼 자주 교체되는 것도 아니었다.
학기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급훈이 특정 날짜의 공지가 아니라 학급 전체가 기억하기를 바라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급훈을 언급하는 일도 있었다.
학생들은 일부러 읽지 않아도 매일 같은 문장을 보게 됐다.
반복해서 보는 문장은 익숙해진다.
그래서 급훈은 교실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은 급훈을 어떻게 기억할까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급훈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급훈이 있었다는 사실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 역시 문장 자체보다 교실 앞에 항상 걸려 있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새로운 급훈을 붙이는 날에는 친구들과 글씨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붓글씨네."
"색지가 더 예쁘다."
문장보다도 어떻게 꾸며졌는지를 더 기억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어떤 학생은 시험 기간이나 중요한 행사 때 급훈을 다시 읽으며 의미를 떠올리기도 했다.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학생마다 달랐다.
급훈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손글씨로 쓴 급훈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두꺼운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거나 색지를 이용해 직접 꾸미는 방식이 흔했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출력물을 사용하는 교실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전자칠판을 사용하는 교실도 늘고 있다.
디지털 화면을 통해 학급 문구를 보여 주거나 학급 소개 화면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형태가 달라져도 공통점은 있다.
학급을 대표하는 짧은 문장을 함께 공유한다는 점이다.
종이든 디지털 화면이든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구를 본다는 경험은 이어지고 있다.
급훈은 학급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작은 상징이었다
급훈 하나만으로 학급 분위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문장을 보면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어떤 분위기의 교실을 만들고 싶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반은 협동을 강조했고, 어떤 반은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또 어떤 반은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학급의 바람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문장을 외우기보다 교실 풍경 속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급훈보다 "칠판 위에 항상 뭔가 걸려 있었지."라는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많다.
마무리
급훈은 교실에서 가장 큰 물건도,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칠판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그 아래 또는 위에 있는 급훈을 함께 보았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새로운 문장이 걸렸고, 학기가 끝나면 그 문장도 교실의 한 해와 함께 마무리됐다.
평범한 한 줄의 글귀였지만 그 안에는 학급이 함께 생활하며 바랐던 분위기와 목표가 담겨 있었다.
지금 오래된 교실 사진을 보면 칠판보다 먼저 급훈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급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교실의 시간을 함께했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다음 글에서는 교실 스피커는 왜 천장이나 벽 위에 달려 있었을까를 주제로, 조회 방송과 쉬는 시간 음악, 비상 안내까지 담당했던 학교 방송 설비의 역사를 살펴본다.
FAQ
Q1. 급훈은 누가 정하나요?
학교와 학급 운영 방식에 따라 다르다.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정하는 경우도 있고, 담임교사가 제안하거나 함께 논의해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Q2. 급훈은 왜 학기 중에 자주 바꾸지 않았나요?
급훈은 일시적인 공지사항이 아니라 학급을 대표하는 문구의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보통 한 학기 또는 한 학년 동안 같은 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Q3. 요즘도 교실에 급훈을 걸어 두나요?
학교와 학급에 따라 운영 방식은 다르다. 종이로 제작해 게시하는 곳도 있고, 디지털 화면이나 전자칠판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0 댓글